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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학의 걸음마

기타 시와 문학/시학

by 석란나리 2010. 4. 6.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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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란 무엇인가.

 

◎ 시가 지향하는 최고의 가치 : 독자의 감동

 

◎ 시의 주제

참주제(문장으로 표현)와 가주제(시의 제재)로 나뉜다.

 

◎ 좋은시 조건

함축성, 시어창조, 상징성, 암시성, 긴장미, 통일성, 연계성, 역설표현

※ 돌려 말하기, 빗대어 말하기, 비유, 상징적 표현등

 

◎ 시인의 태도

- 관조적이며, 본직적(순수가치,영원불변의 가치,궁극적인 가치,전인생적인 가치)가치에 바탕을 둔다

 

◎ 시의 정의 : - 인간의 감정을 담아내는 그릇

- 시가 무용이라면, 산문은 보행이다.

- 시는 산 능선을 밟고가고, 산문은 골짜기까지 샅샅이 보고 가는 것

- 즐겁되 지나치지 않고 애달프되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는 것(공자)

- 시문은 기를 주로하며,정신과 기백이 있어야 한다.

- 시는 체험이다(R.M릴케)

- 시는 상상과 정열의 언어이다(하즈릿)

- 완전한 현실은 시가 아니다. 상상의 영역에 시가 존재한다.(셜리)

- 비유,상징과 같은 표현력에 의해 언어를 조절하는 것이 시이다.(L.분트)

- “기술할 뿐이지 창조하지 않는다”는 ‘술이부작’이다(공자).

# 인생의 사건을 모방하면 산문이 되고, 인생의 감정을 모방하면 시가 된다

# 시는 언어의 예술이며,언어의 연금술사의 작품

 

◎ 시를 구성하는 언어

그것이 아니고서는 다른 언어로 표현할수 없는 것(시의 언어는 사물자체이다).

 

◎ 시상을 자극하는 언어(시심,시상,시정,시흥)

하루살이는 물속에서 천일을 있다가 스물다섯 번 허물벗기를 한 후 태어나고 꼭 하루를 날다 짝짓기를 한 후 죽는다(하루살이는 40일 마다 나이를 더했고 25살 되던 해에 승천을 하여 신방을 채렸네...)

 

◎ 시를 잘쓰기 위한 조건 : - 한국적인 어투나 어조등 순우리말로 표현하는 연습

- 독특한 체험을 시로 표현한다.

- 한 때 본인의 치부를 시로 표현(감동으로 연계) 한다.

- 인간사에 대하여 연민의 정을 담는다.

- 시에 유머러스한 표현을 가미한다.

- 시는 새로운 틀을 창조해야 한다.

- 생로병사를 소재로 한다.

- 현실풍자, 문명의 비판을 소재로 한다.(20c모더니즘의 특징)

- 독자의 감정을 자극시킨다.

- 간접체험도 시적화자의 직접체험으로 가능하다.

- 시인은 세상의 조급한 기대와는 달리 끊임없이 시와, 언어와 다투어야 한다.

- 시는 언어의 진폭이 넓고, 다채롭게 그 활용 가능성을 보여야 한다.

- 시란 바로 기지의 표현과 다른 반복불가능성을 실천하고자 한 작품이다.

- 시란 적어도 손쉬운 고정관념으로부터 매몰차게 등을 돌리고 서려는 작품이어야 한다.

- 시는 압축과 생락으로 이루어지며,줄여서 읽기 어려운 시, 뻔하지 않아 한번에 쉽게 뜻이 잡히지 않은 시, 그것이 무엇인가를 거듭 고심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작품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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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영 시인의 시학 : 1. 진지하게, 2. 건강성있게, 3. 아름답게 4. 쉽게써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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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 작품에 많은 사연을 담지 말것. 한 편의 시가 전달하는 메시지는, 정서든 이미지든 하나여야 하고, 다른 모티프들은 그것이 뿜는 자장(磁場) 안에 들어 있어야 한다. 이때 시는 통일성을 얻는다.

2) 비유와 상징을 아낄 것. 비유는 아낄 수 있는 데까지 아껴야 오롯한 품위을 갖는다. 상징은 시인이 조립하는 것이 아니라 시의 숨결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어야 한다.

3) 긴 시를 경계할 것. 시의 참된 맛은 행간에 있다. 행간에는 침묵의 언어와 정서의 긴장이 깃들여 있다. 긴 시는 행간을 매립하는 위험을 안고 있다.

4) 분명하게 몸으로 감촉할 수 있는 것들을 사용할 것. 불투명한 관념이나 감정을 시 비슷한 문법으로 채색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할 것

5) 몇 번의 침전과정을 거친 그리움이라면 슬픔 따위가 개운하게 세척된 상태라야 한다. 물기가 없이 잘 마른 상태라면 더욱 좋다.

6) 구문이 거추장스러운 것, 관형구나 부사구가 무거운 것은 금기다. 줄기가 가지를 지탱하기 어렵다. 관형어나 부사어가 상쾌하게 오려진 문장은 조촐하고 산뜻하다.

7) 시로 삶의 각성이나 잠언적인 의도를 노출시키지 말것. 시는 철학이 아니라 미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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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나 느낌"을 그대로 쓴 글(진술적 언어)은 시가 아니며, "형태"로 표현된 "생각과 느낌"만이 시일 수 있는 것이다.(관념을 사물화할 수 있는 방법이 이미지의 발견이다. 이미지는 인식의 언어)

 

-시는 묘사로 시작해서 진술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묘사와 진술은 중요한 개념이다.

이들 안에 화자, 비유, 리듬, 어조 등의 모든 하위 시적 언술의 요소들이 들어 있다.

예를 들어 다음의 시를 살펴보자.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기슭에다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 천상병, 「歸天」

 

-전체가 진술(고백적 진술)로 이루어진 이 시는 비유(은유: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리듬(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등 전체구조), 화자(드러난 화자:나), 행 구성(각연의 반복) 등의 시적 언술의 요소로 구성되어 있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묘사와 진술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크게 ‘관찰을 통한 구상화’와 ‘관조를 통한 해명’으로 그 특성이 드러난다고 말할 수 있다. 즉 대상을 정서적 등가물을 동원하여 그림으로써 가시화하는 언술형식이 묘사라면, 느낌 또는 깨달음 자체를 고백적 선언적으로 가청화하는 것이 진술이다.

시적 묘사는 근본적으로 언어를 회화적인 방향으로 가시화하고, 시적 진술은 가청화한다. 묘사가 관찰을 통한 제시라면, 진술관조를 통한 감지이다.

 

(*묘사:시각적인 인식.가시적 제시적 감각적,*진술:가청화를 통한 설득과 깊은 관련. 가청적 고백적 해석적 경향)

묘사는 크게 설명적 묘사와 암시적 묘사로 나눌 수 있다. 전자는 일정한 대상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데만 목적을 둔 묘사이고, 후자는 대상에 대한 지배적인 인상의 묘사를 통하여 뒤에 숨겨진 삶이나 정황을 암시하는 묘사이다. 시가 주로 사용하는 것은 물론 암시적 묘사이다.

 

엄격히 구분되는 것은 아니지만 암시적 묘사도 작가의 심리가 투영되고 있는가 아닌가에 따라 객관적 묘사와 주관적 묘사로 나뉘어진다. 객관적 묘사는 시인이 선택한 한 국면을 통해 현장성 혹은 사실성으로 말하고자 하는 점을 제시하는 형식이고, 주관적 묘사는 심리적, 혹은 감각적 대상파악을 위주로 하는 형식이다.

 

그러나 모든 작품이 전적으로 객관적이거나 주관적인 형태를 보여주지는 않으며 복합적인 형태로 제시되는 것이 사실이다. 다만 작가가 현장과 사실을 바탕으로 하여 표현할 때는 객관적 묘사가 적극적으로 요구되고, 심리적 또는 감각적 대상 파악이 기조를 이룰 때는 주관적 묘사가 요구된다고 보는 것이 좋다

 

-서경적 구조는 언어로 그려진 풍경화의 형태라 말할 수 있고, 심상적 구조는 말 그대로 심리적이고 비가시적인 공간을 묘사하는 형태이며(이 점에서 당연히 주관적 묘사이다), 서사적 구조는 이야기의 묘사로 제시된 형태를 가리킨다.

-아울러 이 묘사의 구조는 일반적으로 화자의 위치(관찰자의 각도)에 따라 고정시점, 이동시점, 회전시점, 영상조립시점으로 구축된다. 고정시점은 눈을 고정해 놓고 관찰한 대상을 하나의 시적 공간 안에 구조화 하는 시점, 이동시점은 시점이 이동하면서 (경험적) 사실을 재구성하는 시점, 회전시점은 한 곳에서 일정한 공간을 보고 있으나 집중되지 않고 눈에 닿는 대로 언어화하는 형태, 영상조립시점은 과거의 경험 사실을 마음에 떠올리면서, 의식 속에 자리잡고 있는 영상을 현재시점에서 재구성한 풍경을 가지는 시점을 말한다. 위 서경적, 심상적, 서사적 구조마다 고정, 이동, 회전, 영상조립시점을 각각 가진다.

-시적 진술은 독백적 진술, 권유적 진술, 해석적 진술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독백적 진술은 스스로가 시적 대상이 되어 반성하고 기원하는 형태(진술하는 주체 중심의 회고와 반성과 기원이 주), 권유적 진술은 자기의 주장을 불특정 개인 또는 다수에게 적극 동조를 요청하는 형태(타인에게 반성을 촉구하는 주장 중심이 언술), 해석적 진술은 일정한 시적 대상에 대한 시인 나름의 해석과 비판의 형태(객체 중심의 탐구와 비판)를 각각 그 특징으로 한다.

 

◎ 퇴고(推敲↭草稿)의 중요성

蔽一言하고 시는 충분한 숙성의 과정을 거쳐야 하고, 또한 충분한 퇴고의 과장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고치다라는 의미를 더욱 실감하기 위해서 퇴고의 어원을 살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 * 推 ;밀다. 敲 ; 매, 회초리

推敲는 널리 알려진 바대로 당나라 시인 賈島의 詩作과정에서 나온 말이다. 그는 어느날 "鳥宿池邊樹, 僧推月下門" 즉, "새는 못가의 나무에 깃들과, 스님은 달 아래 절문을 민다."라는 시를 지었는데, 여기서 '推'자로 할까, 아니면 '敲'자로 할까, 결정을 하지 못하고 거리를 거닐다가 그만 京尹(시장 같은 관직)의 행차를 미쳐 피하지 못한 것이다. 賈島는 그만 끌려가서 자초지정을 말하게 되었는데, 전후사정을 들은 京尹은 당대의 명문장가인 韓退之갔였기에 밀 推보다는 두드릴 敲가 좋다라고 한 수 가르쳐주었던 것이다. 이 일화에서 생긴 말이 바로 推敲이다.

 

◎ 시학의 사상가

- 엘리어트 (관계성의 시학으로 명명)

. 철학과 문학사상을 집약하고 있는 비개성주의, 유기체주의, 전통주의의 인식론적 바탕이 된다

. 어떤 사람 또는 객체는 밖으로부터 의미를 취하는 관계들의 얽힘(nexus of relations)에 의 해서만 가치를 가질 수 있다고 보았다.

 

- 작업방식: 괴테는 64년간 ‘파우스트’에 매달림/ 발자크는 매일 밤 수도사 옷을 입고 촛불을 켜놓고 여섯 시간 이상 작업을 시작해서 작업이 끝날 때까지 60잔의 커피를 마시며 글을 씀/ ‘보봐리 부인’을 쓴 프로베르는 적확한 단어를 찾기 위해 3일 동안 방바닥에서 골머리를 앓음/ 톨킨은 ‘반지의 제왕’을 18년 걸려 완성/ 조르쥬 상드는 줄담배를 피워가며 나흘 만에 장편 ‘악마의 늪’ 탈고// 생활방식: 아리스토텔레스는 요란한 복장으로 학교를 배회하거나 변덕스럽고 사치를 즐기는 최초의 정신 나간 스승/ 러시아 대문호 톨스토이는 하루아침에 방탕한 생활에서 벗어나 윤리성을 설파하고 다니는 기이한 성인/마르셀 푸루스트는 거의 침대에만 누워 지냄/ 프랑스 추리소설의 대가 조르쥬 심농은 영감을 얻기 위해 1만여 명의 여성과 성교(미하엘 코르트, ‘광기에 관한 잡학사전’ 을유문화사, 2009)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즈>는 단 하루를 쓰는데 8년이 걸림. 마가렛 미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집필을 위한 자료수집 20년 걸림. 정약용은 <매씨서평(梅氏書評)>을 51년에 마치고, 신작은 <시차고(詩次故)>를 완성하는데 27년이나 걸렸다고 함

시인 릴케는 조각가 로댕의 비서였습니다. 릴케의 기록에 의하면 로댕은 주머니가 항상 불룩했다고 합니다. 물론 조각을 하기 위한 연장이었겠지? 아닙니다. 단테의 『신곡』이라는 책이었다고 합니다. 로댕은 독서경험을 통해서 얻은 영감으로 <지옥의 문>이라는 위대한 조각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 셰익스피어가 만들어낸 단어 양은 영문학상 최고이며, 그가 새로 만든 단어는 세는 방법에 따라 2,076개라는 주장도 있고, 6,700개라는 주장도 있다고 합니다. 세익스피어 당시에 영어단어가 15만개였고, 그가 사용한 단어가 2만개였으니 그는 자기가 사용한 단어의 10%를 만들어 사용한 것입니다.(폴 존슨, <<창조자들>>, 황금가지, 2009. 100쪽 참조)

- “가슴속에 만 권의 책이 들어 있어야 그것이 흘러넘쳐서 그림과 글씨가 된다(추사 김정희). 바로 서권기 문자향(書卷氣 文字香;책을 많이 읽고 교양을 쌓으면 몸에서 책의 기운이 풍기고 문자의 향기가 난다)이다.

 

◎ 명시 감상

 

가난한 어머니는

항상 멀덕국을 끓이셨다

 

학교에서 돌아온 나를

손님처럼 마루에 앉히시고

 

흰 사기그릇이 앉아 있는 밥상을

조심조심 들고 부엌에서 나오셨다

 

국물 속에 떠 있는 별들

 

어떤 때는 숟가락에 달이 건져 올라와

배가 불렀다

 

숟가락과 별이 부딪히는

맑은 국그릇 소리가 가슴을 울렸는지

 

어머니의 눈에서

별빛 사리가 쏟아졌다.

                                                                       - 「별국」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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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품없이 누워 계신 아버지

차갑고 반응이 없는 손

눈은 응시하지 않는다

입은 말하지 않는다

오줌의 배출을 대신해주는 도뇨관(導尿管)과

코에서부터 늘어져 있는

음식 튜브를 떼어버린다면?

 

항문과 그 부근을

물휴지로 닦은 뒤

더러워진 기저귀 속에 넣어 곱게 접어

침대 밑 쓰레기통에 버린다

더럽지 않다 더럽지 않다고 다짐하며

한쪽 다리를 젖히자

눈앞에 확 드러나는

아버지의 치모와 성기

 

물수건으로 아버지의 몸을 닦기 시작한다

엉덩이를, 사타구니를, 허벅지를 닦는다

간호사의 찡그린 얼굴을 떠올리며

팔에다 힘을 준다

손등에 스치는 성기의 끄트머리

진저리를 치며 동작을 멈춘다

잠시, 주름져 늘어져 있는 그것을 본다

 

내 목숨이 여기서 출발하였으니

이제는 아버지의 성기를 노래하고 싶다

활화산의 힘으로 발기하여

세상에 씨를 뿌린 뭇 남성의 상징을

이제는 내가 노래해야겠다

우리는 모두 이것의 힘으로부터 왔다

지금은 주름져 축 늘어져 있는

아무런 반응이 없는 하나의 물건

 

나는 물수건을 다시 짜 와서

아버지의 마른 하체를 닦기 시작한다.

 

                                                                   ― [아버지의 성기를 노래하고 싶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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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재미교포 2세인 루이스 최가 쓴 {생명일기}(김유진 옮김, 김영사 간행)라는 간병기를 보고 제 체험인 양 가져와서 쓴 것입니다. 물론 아버지의 성기 운운하는 대목은 그 책에 나오지 않습니다. 식물인간의 상태가 된 어른을 간병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여실히 기록되어 있는 그 책을 보고 만약 제 아버지가 저런 상태가 되었다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상상해보면서 한 편의 시를 썼던 것입니다. 이 시가 시적 진실을 추구하는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책을 통한 간접체험을 직접체험으로 슬쩍 바꿈으로써 시를 쓸 수 있었습니다. 한 인간의 체험에는 한계가 있는 법인데, 간접체험과 상상력은 그 한계를 무한정 확장해 줍니다.

==[ 이승하 시인]

경북 의성에서 태어나 김천에서 성장했으며,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되었다. 현재 중앙대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시를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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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꽃을 아네

내가 꺾고 버리지 못한 꽃

꽃은 귀퉁이부터 말라갔네

나는 꽃을 아네

참 많은 꽃을 꺾었네 참

많은 꽃에 꺾였네

한 송이 꺾을 땐 죄스러웠지

또 한 송이 꺾을 땐 운명을 생각 했다네

세 송이 네 송이 될 때엔

꽃을 보지 못했네

나는 꽃을 아네

한 아름의 꽃을 꺾어도 다하지 못할 때

나는 꽃을 꺾지 않았지

나는 꽃을 아네

꺾어야만 순결함이 유지되는 그 비운을

꺾지 않으면 슬퍼지는 그 운명을

나는 꽃을 아네

씨앗으로 담기에는 너무 먼 기쁨

꺾기에는 너무 뜨거운 슬픔

나는 꽃을 아네

나는 꺾네

다 꺾어도 꺾이지 않은 꽃을

 

                                                                                  ―「나는 꽃을 아네」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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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자연 속에 피어서 스스로의 존재성을 드러내며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인간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존재이지만, 꽃이 아름답고 향기로운 것은 꽃 역시도 관계성을 지향하는 존재라는 것을 말해준다. 꽃은 인간에게 아름다움과 향기를 주지만 인간은 꽃에게 유익을 주기보다는 폭력성을 보여주는 경우가 훨씬 많다.「나는 꽃을 아네」에서 화자가 꽃을 꺾는 행위는 꽃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폭력성이다. 그렇기 때문에 화자가 꺾고 버리지 못한 꽃은 귀퉁이부터 말라가서 결국엔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나와 꽃의 관계가 꺾고 꺾이는 관계로 연결되어있다는 것은 비극이다. 하지만 이것은 쉽게 해소될 수 없는 비극성을 내포하고 있다. 왜냐하면 화자가 꽃을 꺾는 행위는 본질적으로 인간의 욕망과 관계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화자가 꽃을“꺾지 않으면 슬퍼지는 운명”을 자각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인간이 살아있는 한 욕망의 굴레를 벗어나기 힘들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인간이 꽃을 꺾는 것은 인간의 욕망 속에 내재하는 조급함 때문이다. 시인이“씨앗을 담기에는 너무 먼 기쁨”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인간의 욕망이 씨앗을 얻기 위해서 먼 기쁨을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것을 암시해준다. 시인이“꺾여야만 순결함이 유지되는 비운”을 역설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도 그 순결함이라는 것이 자아중심의 순결함이고 극히 이기적인 순결함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꽃을 꺾지만 정작 꽃은 “꺾어도 꺾어도 꺾이지 않는 꽃”으로 남아있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시의 제목인 “나는 꽃을 아네”라는 시인의 진술은 역설일 수밖에 없다. 이 시를 사랑 시로 보면 남성의 욕망의 이면에 숨어있는 폭력성을 보여준 것이고, 생태 시로 보면 자연에 대한 인간의 폭력성을 보여준 것이 된다. 이 시에서 꽃(자연)과 나(인간)의 평등한 관계를 파괴하는 것은 꽃은 꺾어야 한다는 인간의 강박관념이다. 이러한 강박관념의 심층에는 시인의 육체적 욕망이 자리하고 있다. 이것은 그의 의식에 자리잡고 있는 부정성이 외적인 환경에서 온 것뿐 아니라 내면적인 것임을 말해준다. 그가 “어느 음부엔가 이 수억의 정자/집어넣고 싶다 해탈하고 싶다 여인이여/나를 이끌 여,……미치겠네 쓱/밀어넣고 싶은 이 딱딱한 지식이라는/이 성기”(「책꽂이의 책이 내 삶의 단면이냐?」)라고 했을 때, 그의 욕망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사회적인 차원으로 확산된다. 그의 시의 건강성은 자신의 욕망을 개인적인 차원에 고정시키지 않는 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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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희 1996년 경인일보, 199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으로 『폐차장 근처』,『이불속의 쥐』,평론집으로『존재와 거울의 시학』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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