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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의 시 모음

기타 시와 문학/시학

by 석란나리 2009. 10. 13.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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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

 

눈이 많이 와서
산엣새가 벌로 나려 멕이고
눈구덩이에 토끼가 더러 빠지기도 하면
마을에는 그 무슨 반가운 것이 오는가 보다
한가한 애동들은 어둡도록 꿩사냥을 하고
가난한 엄매는 밤중에 김치가재미로 가고
마을을 구수한 즐거움에 사서 은근하니 흥성흥성 들뜨게 하며
이것은 오는 것이다
이것은 어느 양지귀 혹은 능달쪽 외따른 산옆 은댕이 예데가리밭에서
하룻밤 뽀오햔 흰김 속에 접시귀 소기름불이 뿌우현 부엌에
산멍에 같은 분틀을 타고 오는 것이다
이것은 아득한 옛날 한가하고 즐겁든 세월로부터
실 같은 봄비 속을 타는 듯한 여름볕 속을 지나서 들쿠레한 구시월
갈바람 속을 지나서
대대로 나며 죽으며 죽으며 나며 하는 이 마을 사람들의 의젓한 마음을 지나서
텁텁한 꿈을 지나서
지붕에 마당에 우물둔덩에 함박눈이 푹푹 쌓이는 어느 하룻밤
아배 앞에 그 어린 아들 앞에 아배 앞에는 왕사발 아들 앞에는 새끼사발에
그득히 사리워 오는 것이다
이것은 그 곰의 잔등에 업혀서 길여났다는 먼 옛적 큰마니가
또 그 집등색이에 서서 재채기를 하면 산넘엣 마을까지 들렸다는
먼 옛적 큰 아바지가 오는 것같이 오는 것이다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심심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쩡하니 익은 동치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쩔 끓는 아르궅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의젓한 사람들과 살틀하니 친한 것은 무엇인가
이 그지없이 고담(枯淡)하고 소박(素朴)한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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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신의주(南新義州) 유동(柳洞) 박시봉방(朴時逢方)-백석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끝에 헤메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木手)네 집 헌 삿을 깐,
한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위에 뜻없이 글자를 쓰기도하며,
또 문 밖에 나가지두 않고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베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 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 인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끼며, 무릎을 꿇어보며,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어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삿 : 갈대를 엮어서 만든 자리
쥔 : 주인
딜옹배기 : 아주 작은 자배기
북덕불 : 짚북더기를 태운 불
나줏손 : 저녁 무렵
바우섶 : 바위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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筆說로는 形容할 수 없을 정도로

詩만이 지닐 수 있는 眞味함이 가슴을 울린다이가 지닌 고귀함이며 단아함이며

간결하면서 담백함의 美를 주는 
그의 詩 속에는 수없이
쏟아 내고 있는 靜[고요함]의 限[막바지],
정情의 極[다함]과 이어진 寒[쓸쓸해져 차져버린]이 있다.
懷(회)와 당시를 대변되는 시님의 한(恨)을 본다.
그러면서도 그는 갔다. 정한 갈매나무로,
모든 것을 삭이고 안고 가는 것이다. 解禁  후에야 빛을 본 님의 詩.
읽어도 읽어도
가슴 속에 수수없이 울며 내리는 그의 독백을
오늘밤도
울어
같이 내린다.
모더니즘 속 낭만을 노래한 詩가 주류던 당시
백석은 특유의 평안 방언 말로
이야기하듯 나름의 詩世界를 담아,
새김질해 온 당대 제일의 詩人이다--李旻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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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하는 것은

                                           백석

포근한 봄철날 따디기의 누굿하니 푹석한 밤이다
거리에는 사람두 많이 나서 흥성흥성할 것이다
어쩐지 이 사람들과 친하니 싸다니고 싶은 밤이다

그렇건만 나는 하이얀 자리 우에서 마른 팔뚝의
새파란 핏대를 바라보며 나는 가난한 아버지를
가진 것과 내가 오래 그려오던 처녀가 시집을 간 것과
그렇게도 살뜰하던 동무가 나를 버린 일을 생각한다

또 내가 아는 그 몸이 성하고 돈도 있는 사람들이
즐거이 술을 먹으러 다닐 것과
내 손에는 新刊書 하나도 없는 것과
그리고 그 <아서라 世上事>라도 들을
유성기도 없는 것을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이 내 눈가를 내 가슴가를
뜨겁게 하는 것도 생각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인인 이 분이 사랑했던 여인. 그를 버리고 간 사람. 나는 자야(子夜)라고만 생각했었다. (자야의 본명은 김영한이다. 백석이 이백의 '자야오가(子夜吳歌)'에서 따 지어준 이름이 자야다.) 38년도 작품인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에서 나타샤는 아마도 자야가 맞을것이다. 자야와 함께 백석이 '전쟁과 평화'를 감상했다하니. (나타샤는 '전쟁과 평화'의 여주인공이다. 백석은 그 때 한창 러시아문학에 빠져있었다고-)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자야의 주장이다. 김자야가 쓴 '내사랑 백석'을 읽어보면, 백석은 정말 로맨티스트다. 그리고 둘의 사랑은 너무나 애틋하다. 하지만 이야기는 양쪽 다 들어봐야 확인할 수 있는데, 백석은 말이 없다.

분명하게 38년 4월에 남긴 '내가 생각하는 것은'에서의 그가 '오래 그려오던 처녀'는 자야가 아닐게다. 백석에게는 또다른 사랑이 있었다. 곱게도 란(蘭)이라고 불리어지는 사람. 백석은 '통영'이라는 제목으로 3편의 시를 발표한다. 1935, 36년에 걸쳐. 바로 남해안 통영에 그가 그리던 처녀가 살고 있었다. 평북 정주 출신인 백석은 그 처녀를 보기위해 멀리 통영까지 왔다갔다하는데 바로 그 때 이 시들을 남긴 것이다. 그렇다면 백석은 자야와 함께있을 때도 그녀를 그리워한게 되나..; 지나친 비약인가. 하지만 38년도 같은 해 잖아? (출판시기일 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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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승

 

여승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냄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녯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의 어늬 산 깊은 금덩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어린 딸아이를 따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 년이 갔다

지아비 돌아오지 않고

어린딸은 도라지 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꿩도 설게 울은 슬푼 날이 있었다

산절의 마당구에 여인의 머리 오리가 눈물 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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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燒酒)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 마가리 : 오막살이.

 

북국(北國)에서는 눈이 ‘펄펄’ 내리지 않고 ‘푹푹’ 내려 쌓인다. 어느 눈 내리는 밤, 소주를 마시면서 한 사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기다린다. 이 이국 이름의 여인은,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서 이미 활달하고 천진난만한 ‘귀여운 여인’의 대명사로 우리에게 다가온 바 있다.(영화의 오드리 헵번을 상상해 보라!) 나타샤를 알게 된 안드레이가 “내 인생은 끝나지 않았다”면서 새로운 삶의 의지를 충전하는 장면 역시, 이 시편 속의 사내와 나타샤 위로 오버랩된다. 이제 백석이 남긴 이 명편(名篇)으로 인해 ‘나타샤’는 이상화의 ‘마돈나’와 함께 모든 가난한 청년으로 하여금 낭만적 사랑의 도피행을 꿈꾸게 하는 견고한 아이콘이 되었다.

일체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 출출이(뱁새)만 외로이 우는 마가리(깊은 산골)로 숨어 들어가려는 사내의 의지에 나타샤가 적극적인 호응을 한다. 그녀는 사내의 귀에 대고 자신들의 사랑이 세상에 져서 쫓겨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속악한 세상을 거부하는 적극적 행위라고 속삭인다. 그때 비로소 우주의 화음(和音)처럼 눈은 푹푹 내려 쌓이고, 사내와 나타샤는 사랑을 하고, 눈처럼 새하얀 ‘흰 당나귀’도 ‘응앙응앙’ 울음으로 화창(和唱)을 한다.

백석은 ‘통영(統營)’ 연작을 통해 ‘손방아만 찧는 내 사람’에 대한 지극한 그리움을 호소했고, ‘바다와 같이 당신을 사랑하고만’(‘바다’) 싶다는 소망도 내비쳤다. 그렇게 언제나 ‘고운 사람을 사랑’(‘내가 이렇게 외면하고’)했던 청년 백석의 사랑은 이토록 짙은 낭만적 몽상의 분위기에 감싸인 채 우리의 기억 속으로 ‘푹푹’ 내려 쌓이고 있다.

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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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의 시, 석양 <삼천리 문학>(1938)

거리는 장날이다
장날 거리에 영감들이 지나간다
영감들은
말상을 하였다
범상을 하였다
족제비상을 하였다 / 얼굴 모습
개발코를 하였다
안장코를 하였다 / 코의 모습
그 코에 모두 학실을 썼다

둥글고 굵은 셀룰로이드 테
돌체돋보기다
대모체돋보기다
로이도돋보기다
영감들은 우리창 같은 눈을 번득거리며
투박한 북관(北關)말을 떠들어 대며
쇠리쇠리한 저녁해 속에
사나운 짐승같이들 사라졌다

●핵심정리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율격 : 내재율
▶성격 : 향토적, 회화적, 남성적, 희극적, 묘사적, 사실적
▶제재 : 장날
▶주제 : 장날 저녁 무렵의 풍경과 정취(장날에 만날 수 있는노인들의 수수하고 친숙한 삶)

●이해와 감상
매우 희극적이고도 코믹한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드는 시이다. 저녁 때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에, 인생의 석양이란 의미까지 중첩되어 있다. 그래서 이 시에는 눈물겨운 주체의 정서가 마디마디 서리어 있다. 우스꽝스럽게 생긴 북관 지방의 노인들이 그들만의 투박한 방언을 한바탕 왁자지껄하게 지껄이며 지나간 뒤의 고요……. 다분히 현장의 생동감을 중시하면서 여러 유형의 이미지들을 다채롭고도 능란하게 구사했다.

이들의 인상을 묘사함에 있어 매우 해학적인 표현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말상', '범상', '족제비상' 등은 동물과 관련 지은 얼굴의 생김새이고, '개발코', '안장코', '질병코'는 그 생긴 모습들이 너부죽하거나 투박한 코의 생김새이다. 그 코가 재미있게 묘사된 것은 다음 행의 안경들을 걸치기 위한 것이고, 안경 속의 번뜩이는 눈빛들은 해질 무렵의 햇살과 조응한다. 그리고 투박한 북쪽 마을의 방언으로 시끄럽게 떠들면서 '사나운 짐승 같이' 집으로 돌아가는 한 무리의 영감들을 연상할 수 있다.

이들 인상이 하나같이 기묘한 데도 두렵거나 무섭게 느껴지지 않고, 우리 장터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낯익은 모습들이다. 그리고 이 시에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백석이 그의 시에서 익숙하게 사용하는 '시골 사람이 쓰는 말 그대로'의 어법이다. 이 어법은 모국어의 지역성과 향토성을 가장 짙게 풍기는 것이었고, 이러한 어법을 강조하는 것이야말로 식민지 체제의 폭력적 구조에 버티어 대항할 수 있는 독자적 방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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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바람벽이 있어

 

                                                                   백석(백기행)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십오촉(十五燭)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 던지고
때글은 낡은 무명 샷쯔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은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느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주앉어 대구국을 끓여 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야 어느사이엔가
이 흰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굴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내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 하는 듯이 나를 울력 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 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스 쨈'과 '도연명'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 하듯이 

 

 

<일본 제국주의 치하에서 많은 지식인들이 차가운 북방지역 마도강(만주,간도)으로 떠나갑니다. 백석도 예외는 아니었고요. 고향산천("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과 두고온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쓸쓸하게 묻어납니다. 외로움속에서....자신의 고귀한 마음하나 간직하고 싶어하는 시인의 간절함이 묻어납니다.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라는 구절에서 연약한듯 하지만 강인한 의지가 느껴지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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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막( 酒幕)

 

호박닢에 싸오는 붕어곰은 언제나 맛있었다.

부엌에는 빩앟게 질들은 팔(八) 모알상이

그 살읗엔  샛파란 싸리를 그린눈 알만한 잔(盞)이 뵈였다.

아들 아이는 범이라고 장고기를 잘잡는 앞니 뻐드러닌 나와 동갑이었다.

울파주 밖에는 장군들이 따라와서

엄지의 젓을 빠는 망나니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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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夏沓/백석(白石 본명;기행, 1912.7.1 - 1995 )

                                     한국의 시인, 수필가, 번역가

 

1. 서 론

백석(白石)은 1912년 평북 정주군 갈산면 익성동에서 부친 수원백씩 백용삼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본명은 백기행이지만 작품을 발표할 때는 백석 이라는 필명을 애용하였다. 오산소학교를 거쳐 오산학교에 입학한 그는 1929년 오산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그가 문단에 첫선을 보인 것은 1930년 <조선일보>신년현상문예에 단편소설「그 모와 아들」이 당선되어서 인데 그는 곧 <조선일보>후원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동경의 청산학원에서 영문학을 수학하였다. 1934년 청산학원을 졸업한 그는 <조선일보>에 입사하여 출판부 일과 계열사인 <여성>지를 편집을 하면서 수필 「耳說 귀ㅅ고리」를 쓰고,「臨終 체흡의 6월」이라는 서간문을 번역 소개하였고,「죠이스와 애란문학」이라는 티 에스 마르키 스의 논문을 번역하였고, 단편소설「마을의 유화」와「닭을 채인 이야기」를 발표하였다.

즉 그는 외국어 실력을 바탕으로 외국문학과 관계된 글을 번역.소개하였고, 등단 장르였던 소설을 두편 발표하였으며 수필을 한 편 썼다. 이것으로 보면 문필활동 초기에 그는 산문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발표한 첫 시는 1935년 1월 20일, 33편의 시를 묶어 시집 『사슴』을 상재하였다.

시를 처음 발표한 시기부터 시집을 낼 때까지의 기간이 다섯 달도 채 되지 않는 것이다. 이때부터 1941년까지 그는 집중적으로 시작활동을 전개하였다. 시집을 낸 직후인 1936년 4월초 백석은 조선일보사를 사직하고 함흥에 있는 영생고보의 영어교사로 부임하였으나 1938년엔 영생고보를 사임하고 다시 조선일보사에 입사했다가 이듬해 만주의 신경으로 떠나 만주국 국무원 경제부에서 일하기도 했다.

북만주 산간 오지를 여행하기도 하며 측량보조원 측량서기 소작인 생활 만주 안동에서 세관원 생활등 다양한 생업에 종사하다 해방후 신의주를 거쳐 고향 정주로 돌아왔고 그대로 북한에 남아 있었다. 해방후 발표된 그의 시는 친구인 허준이 가지고 있다 발표한 것이고 그 이후 확인된 작품을 보면 백석은 1961년 까지는 조선작가동맹에 소속되어 창작을 하고 번역을 하였으며 아동문학평론을 발표하였다.

이렇게 보면 그의 시세계는 시집「사슴」을 내던 시기와 사슴 이후 시기, 그리고 북한에서의 활동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러나 북한에서 전개한 문학활동은 당의 정책을 전폭적으로 지지.선전하는 내용으로 일관되어 있어 해방직후까지 발표한 시만을 대상으로 그의 시세계를 고찰한다.

2. 묘사의 시학

첫 작품을 발표하고 첫시집 「사슴」을 낼 무렵 백석이 견지하고 있는 시작 방법은 묘사이다. 그 방법이 지니고 있는 모더니티를 가장 먼저 지적한 사람은 김기림이다. 모더니즘 운동의 기수였던 그는 백석이 시집「사슴」을 낼때 같은 조선일보사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시집이 발간되자 제일 먼서 서평을《조선일보》에 실었다.

백석은 우리를 충분히 애상적이게 만들 수 있는 세계를 주무르면서도 그것 속에 빠져서 어쩔 줄 모르는 것이 얼마나 추태라는 것을 가장 절실하게 깨달은 시인이다. 차라리 거의 철석(鐵石)의 냉담에 필적하는 불발한 정신을 가지고 대상과 마조 선다. 그 점에「사슴」은 그 외관의 철저한 향토 취미에도 불구하고 주착없는 일련의 향토주의와는 명료하게 구별되는 '모더니티'를 품고 있는 것이다.

김기림「사슴을 안고」,<조선일보>1936. 1. 29.

모더니즘 시인들이 그야말로 신선한 감각으로서 문명이 던지는 인상을 붙잡고 음으로서 말의 가치, 시각적 영상, 의미의 가치도 여러가지 가치의 상호작용에 의한 전체적 효과를 의식하고 일종의 건축학적 설계 아래서 시를 쓰는 것이라면 백석은 고향의 풍물과 민속,인물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즉 백석은 모더니스트 시인들과 달리 시의 대상은 고향의 풍물과 민속에 두었지만 감정과 정서는 철저하게 절제했는데 그 방법이 묘사인 것이다.

백석이 묘사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그가 소설로 등단하였고 시를 발표하기 전까지 소설을 두 편이나 발표하고 있다는 사실과 관련되기도 한다. 소설은 서술자의 의도나 감정을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과 행동, 인물의 성격,또는 풍경 등을 통해 이야기하는, 즉 간접화시키는 장르인데 대상에 대한 생각과 정서를 직접 서술하지 않고 대상을 묘사함으로서 간접화시키는 백석의 시작 방법론은 시를 창작하기 전 훈련한 소설의 장르적 성격에서 연원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물론 소설은 사건을 서술하는 장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에서는 인물,풍경, 심리, 행동 등 묘사 아닌 것이 없다고 할 정도이다. 풍물 묘사만으로 시적 깊이를 획득하기 어렵자 사건을 끌어들이면서 돌파구를 마련했다고 하는 지적도 타당성이 있지만 이때 이 사건은 소설에서 다루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즉 백석이 시에서 사건을 다루는 방식은 묘사인 것이다.

아배는 타관가서 오지 않고 산비탈 외딴집에 엄매와 나와 단둘이서 누가 죽이는듯이 무서운밤 딥뒤로는 어느 산골짝이에서 소를 잡아 먹는 노나리군들이 도적놈들같이 쿵쿵거리며 다닌다.

날기 멍석을 저간다는 닭보는 할미를 차굴린다는 땅아래 고래같은 기와집에는 언제나 니차떡에 청밀에 은금보화가 그득하다는 외발가진 조마구 뒷산 어늬뫼도 조마구네 나라가 있어서 오줌누러 깨는 재밤 머리맡의 문살에 대인 유리창으로 조마구군병의 새깜안대가리 새깜안 눈알이 들여다 보는때 나는 이불 속에 자르러붙어 숨도 쉬지 못한다.

중략

섯달에 내빌날이드러서 비빌날 밤에 눈이오면 이밤엔 쌔하얀 할미귀신의 눈귀신도 내빌눈을 받노라 못난다는 말을 든든히녁이며 엄매와 아는 앙궁옿에 떡돌옿에 곱새담옿에 함지에 버치며 대낭푼을 놓고 치성이나 들이듯이 정한 마음으로 내빌 눈약 눈을 받는다.

이눈세기물을 내빌물이라고 제주병에 진상항아리에 채워두고는 해를 묵여 가며 고뿔이와도 배앓이를 해도 갑피기를 앓아도 먹을 물이다.
-「고야」전문

이 시는 제목 그대로 '옛밤'을 소재로 한 것인데 밤이면 기억나는 어린 날의 밤풍경 다섯 개를 병렬시켜 놓은 것이다. 한 마디로 하면 밤풍경이지만 밤이라는 시간을 풍경화로 제시하여 공간화시키는 이 시는 바로 그 기법의 측면에서도 모더니즘적이다.

백석의 시를 처음 대할 때 느끼는 곤혹감은 낯선 평북 방언 때문이다. 그러나 방언이 주는 곤혹감은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이 말하듯 '낯설게 하기'의 효과를 지니며 독자들에게 언술 자체에 관심을 집중하게 만들고 그 정확한 의미는 모른다 해도 환기하는 정조에 젖어들게 만든다.

백석시가 보인 관심 중의 하나는 고향 산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인데 특히 다음 시에서는 그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3. 독백의 시학

시집 「사슴」의 발행일자는 1936년 1월 20일인데 백석은 그 직후인 1월 23일자 <조선일보>에 시「통영」을 발표하였다. 이 시는 물론 이제까지의 시의 기법인 묘사를 통해 통영을 그리고 있으면서도 마지막 연에서 시적 화자의 상태를 진술하고 있는데 이 점이 시집에 실린 시들과의 차이이다. 이전의 시에서 생각이란 시어가 보이는 것은「고야」에서인데 그것은 없어도 기본 의미에서는 차이가 없는 보조서술어 용법으로 사용되었다.

「통영」의 마지막 연에 보이는 '녕 낮은 집 담 맞은 집 마당만 높은 집에서 열나흘 달을 업고 손방아만 찧는 내 사람을 생각한다'에서 '생각한다'는 그 앞에 묘사된 통영의 풍물과 대조시켜 시적 화자의 상태, 그 중에서도 생각을 직접 진술하는 것이다. 이때부터 백석이 발표하는 시에 가장 빈번하게 나타나는 시어 중의 하나가 '생각하다'이다.

36년 3월<시와 소설>1호에 발표한 「탕약」에 사용된 '생각하다'는 시어에는 보다 역사적이고 시간적인 의미가 포괄되어 있다.뿐만 아니라 이 시간성은 연 구성의 원리로도 작용한다.

눈이 오는데
토방에서는 질화로웋에 곱돌탕관에 약이 끓는다
삼에 숙변에 목단에 백봉령에 산약에 택사의 몸을 보한다는 육미탕이다
약탕관에서는 김이올으며 달큼한 구수한 향기로운 내음새가나고
약이 끓는 소리는 삐삐 즐거웁기도 하다

그리고 다딸인약을 하이얀 약사발에 밭어놓은 것은
아득하니 깜하여 만년 옛적이 들은 듯한데
나는 두손으로 곻이 약그릇을 들고 이약을 내인 옛 사람들을 생각하노라면
내마음은 끝없이 고요하고 또 맑어진다.

-「탕약」전문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고백하는 방식은 이제까지의 시에서 보여주던 간접제시의 방식과는 다른 방법론으로 시인의 관심이 객관적인 대상을 묘사하는 것에서 주관적인 생각과 마음의 세계로 바뀌었음을 보여준다.

백석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드러내 보이는 낭만주의적 시작태도를 가지면서 시간성과 역사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낭만주의의 기본 속성으로 볼때 당연한 것이다.

낭만주의자들은 세계를 감성적으로 인식할 뿐만 아니라 유기체적 세계관을 지니고 있었다. 유기체적 세계관은 생명체적 자연인식인데 생명체란 탄생,성장, 소멸의 지속성이 그 본질을 이루는 것이기에 낭만주의자들은 시간과 역사에 관심을 가졌던 것이다.

4. 결 론

첫 작품을 발표하고 첫 시집 <사슴>을 낼 무렵 백석은 감정과 정서를 철저하게 배제하면서 어린 화자의 시선으로, 평북방언으로, 고향의 풍물과 민속,인물을 묘사하고 있다. 이 시기의 시학을 묘사의 시학이라 이름 붙였는데 이것은 당시 문단을 풍미하였던 모더니즘의 영향이면서 동시에 소설 장르의 영향이기도 한 것으로 보인다.

시집을 발표한 이후 백석의 시작 방향은 생각과 정서를 직접 술회하는 쪽으로 기울어지게 되어 이 시기의 시학을 독백의 시학이라 이름 붙였다. 물론 이 시기에도 많은 기행시는 여전히 여행지의 풍물을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감정과 정서를 철저하게 배제하던「사슴」시기와 다르게 이 시기는 화자의 생각과 감정에 기울여져 있음을 볼 수 있다.

36년에서 38년 사이에는 단순히 생각과 마음의 세계를 발견한 화자의 모습만 나타나 있다면 그 이후의 시는 화자의 생각과 감정을 진술하거나 토로하고 있음을 불 수 있다. 이런 낭만주의적 시작태도를 보이면서 백석은 공간성보다는 시간성과 역사성에 관심을 갖게 된다.

이 시기가 시인 개인으로서도 어렵고 굴곡 많았던 시기이면서 동시에 민족 전체로서도 어려웠던 시기였기에 제어하기 어려운 쓸쓸하고 외로운 감정을 그대로 토로하면서도 자신을 추스리기 위해 애쓰는 시를 많이 남겼지만 그런 중에도 자연과 대지의 생명력에 힘입어 생기는 회복해 보려는 시도 남기고 있다.

백석은 한국이 낳은 가장 자랑스러운 시인이며 수필가이며 번역가이다. 이러한 위대한 백석이 진정 우리들 곁에 있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필자는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백석은 시인으로만 평가하더라도 세계의 어느 유수한 시인들과 비교를 하여 볼 때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로 우수하다.

백석이 점차로 알려지던 그 때 보다는 오히려 그들보다 월등한 수준으로 높은 평가를 받을 것이다. 지금까지는 분단이라는 많은 제약과 굴레 그리고 억압속에서 그러한 사실들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지 백석은 그 동안 꾸준히 적지 않은 사람들에 의해서 평가를 받아왔다. 이러한 사실은 당대는 물론 후대에도 평가를 받으리라는 예견이 이미 시인이자 평론가인 박용철에 의해서 동시대에 대두되었다.

문학은 우리의 역사와 운명을 같이 하면서 고난의 길을 걸어왔다. 문학은 생업으로 삼은 백석 자신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백석은 이러한 고난을 온몸으로 체감하여 한 시대를 누구보다도 치령하게 살아왔다. 최고의 시인이면서도 언제나 평범한 기자로 또한 교사로 공무원으로 농부로 변역가로 독립운동가로 살아왔다.

그러면서도 해방이 되기 전까지는 광산에서 일을 하기도 하였으며 세관원까지 하였다. 해방후에는 민족지도자 고당 조만식 선생의 통역비서를 하기도 하였으며 세계적인 소설문학가로 활동했다. 그와중에도 몇번의 결혼 실패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석은 언제나 훌륭한 작품을 남겼다 이 훌륭한 시들은 고난의 시기를 비껴나가는 과정을 나타내는 시들이며 또한 고난 그 자체를 포용하는 놀라운 작품들이다 또한 지조있고 고결한 작품들은 오늘날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길잡이가 되고 있다. 우선 백석은 우리 학문의 나아갈 길을 제시하여 주고 있다 또한 어설픈 외래와보다 내실있고 한국화를 요구하고 있다.

백석은 자신의 첫시집 <사슴>에서 33편을 실음으로서 보이지 않는 항일을 하고 있다. 그의 시는 대부분 민족적 자존심이 가득한 시들을 발표하고 있다. 극도로 자신에게 엄격한 백석은 자신의 삶 전부를 청렴결백으로 일관했다.


6. 주요 작품

-그 모와 아들/ 정주성/ 사슴/ 통영/ 고향/ 북방에서/ 적막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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