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 (創造)
한국 최초의 종합 문예동인지. 1919년 2월 김 동인(金東仁)·주요한(朱耀翰)·전영택(田榮澤)· 김환(金煥)·최승만(崔承萬) 등이 창간하였다. 21년 5월 통권 제 9 호로 종간될 때까지 도쿄[東京]·평양(平壤)·서울에서 편집, 간행되었다. 동인은 창간동인 외에 이광수(李光洙)·이일(李一)·박석윤(朴錫胤)·김명순(金明淳)·오천석(吳天錫)·김관호(金觀鎬)·김억(金億)·김찬영(金瓚永)·임장화(林長和) 등 13명이다. 수록 작품은 시 70여 편, 소설 21편, 희곡 4편, 평론 16편, 번역시 49편이었고, 중요 작품으로 김동인의 <약한 자의 슬픔> <마음이 옅은 자여> <배따라기>, 전영택의 <천치? 천재?> 등의 단편소설과 주요한의 <불놀이> <별 밑에 혼자서> 등이 있다. 한국 신문학사(新文學史)에서 그때까지의 계몽주의적 성격을 버리고 구어체 문장의 확립, 새로운 문학사조였던 자연주의·사실주의 문학의 개척, 본격적인 자유시의 발전 등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뒤이어 나온 《폐허》 《백조(白潮)》 등과 함께 한국 근대문학의 주춧돌 역할을 하였다. A5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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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6월에 창간되어 26년 8월까지 통권 72호를 발간한 월간 종합잡지. 항일운동과 신문화운동을 활발히 전개하던 천도교에서 민족문화실현운동의 일환으로 세운 개벽사(開闢社)에서 출간한 한국 최초의 본격적인 종합잡지이다. 개벽이란 이름은 <후천개벽사상>에서 딴 것이며 언론·학술·종교·문예 등을 게재하였는데 전체지면의 1/3을 문학과 예술면으로 할애하여 문예면을 중요시하였으며 문체는 국한문혼용체를 썼다. 일제의 탄압으로 창간호부터 압수당하였고 그 뒤에도 시련이 계속되어 발행기간 중 발매금지(압수) 34회, 정간 1회, 벌금 1회의 수난을 당하였다. 26년 일제에 의해 강제 폐간당한 후 34년 11월 신간(新刊) 《개벽》이 발간되어 35년 3월까지 4호가 속간되었고, 8·15광복 후 46년 1월 복간호가 나온 후 49년 3월까지 9호가 간행되었다. 3번에 걸쳐 나온 것을 합치면 통권 85권이 된다. 70년 12월에는 일제강점기에 발행된 《개벽》지 76권분의 영인본(影印本)이 21책으로 되어 개벽사에서 발행되었다. 《개벽》지는 배경으로 하고 있는 천도교의 전신이 1894년 민중을 중심으로 한 한국 최초의 근대적 개혁운동인 동학농민혁명운동을 주도한 동학당이고 천도교 또한 항일독립운동을 전개하였으므로 필연적으로 일제의 정책에 항거하여 민족의식의 고취에 역점을 두었다. 이 잡지는 1900년대 당시 계급주의적 경향문학을 지향하던 신경향파 초기의 작가들을 많이 배출하였으며 한국 문학사상 중요한 작품들이 많이 발표되었다. 당시 이 잡지를 통해 작품활동을 한 작가로는 박영희(朴英熙)·김기진(金基鎭)·현진건(玄鎭健)·김동인(金東仁)·이상화(李相和)·염상섭(廉想涉)·최서해(崔曙海)·김동환(金東煥)·나도향(羅稻香)·박종화(朴鍾和) 등이 있다. 또한 문학작품뿐만 아니라 문학이론, 외국문학 등을 소개하였고 신인을 발굴해 내는 등 1920년대 문학창달에 기여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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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조 (白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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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1월 박종화(朴鍾和)·홍사용(洪思容)·나도향(羅稻香)·박영희(朴英熙) 등이 창간한 문예동인지. 동인은 홍사용·박종화·현진건(玄鎭健)·이상화(李相和)·나도향·노자영(盧子泳)·박영희·안석주(安碩柱)·이광수(李光洙)·김기진(金基鎭) 등이다. 주요 작품은 시에 박종화의 《흑방비곡(黑房悲曲)》 이상화의 《나의 침실로》 박영희의 《꿈의 나라로》 등 22편, 소설에 나도향의 《여이발사》, 현진건의 《할머니의 죽음》, 박종화의 《목매는 여자》 등 11편, 기타 기행문·평론·시극 등이 있다. 흔히 <백조파>라고 지칭되는 이들의 문학적 경향은 서구의 낭만주의와 달리 병적·퇴폐적·감상적이며 당시 유행사조인 자연주의적 특성을 보여준다. |
장미촌 (薔薇村)
1921년 5월에 창간된 시동인지. 발행인은 변영서(邊永瑞), 편집인은 황석우(黃錫禹)이다. 동인은 변영로(卞榮魯)·황석우·정태신(鄭泰信)·신태악(辛泰嶽)·노자영(盧子泳)·박영희(朴英熙)·박종화(朴鍾和)·박인덕(朴仁德)·이항(李虹)·오상순(吳相淳)이다. 표지에는 <자유시의 선구>라는 부제와 함께 그들의 선언문을 게재하였다. 선언문에서 《장미촌》은 평화와 안식의 이상향을 뜻하는 것이며, 그 전제로서 먼저 고뇌와 고독이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동인의 주요작품은 황석우의 <장미촌의 향연>, 박종화의 <우유빛 거리>, 노자영의 <피어 오는 장미>, 변영로의 <장미촌> 등으로, 낭만적인 경향의 시들이다. 4·6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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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7월 김억(金億)·염상섭(廉想涉)·오상순(吳相淳)·황석우(黃錫禹) 등이 창간한 문예동인지. 경성 폐허사에서 발행하였다. 출판업자 고경상(高敬相)의 출자로 김억·남궁벽(南宮璧)·염상섭·오상순·황석우·이병도(李丙燾)·나혜석(羅蕙錫)·이익상(李益相)·이혁로(李赫禿)·김영환(金永煥)·김찬영(金瓚永)·김원주(金元周)·민태원(閔泰瑗) 등이 동인으로 참가, 2호까지 발간되었다. 《폐허》라는 명칭은 J.C.F. 실러의 <옛것은 멸하고, 시대는 변하였다/내 생명은 폐허로부터 온다>라는 시구에서 따온 것이다. 19세기 후반 서구문학의 상징주의와 퇴폐적 경향을 소개하였으며, 김억의 《스핑크스의 고뇌》, 남궁벽의 《오산통신(五山通信)》, 오상순의 《시대고(時代苦)와 희생》 《허무혼(虛無魂)의 선언》, 황석우의 《태양의 침몰》 등이 발표되었다. 24년 2월 《폐허이후(廢墟以後)》라는 이름으로 염상섭이 복간, 임시호를 발행하였으나 곧 폐간되었다. 《창조(創造)》 《백조(白潮)》와 더불어 한국 문학 사상 큰 자취를 남겼다. 4·6판. 제 1호 130면, 제 2 호 13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