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조서정(梅鳥抒情)*
전영관
저녁마다, 천지간은 하루도 다름없이 저리 붉은데
보내 온 다홍치마는 병색 완연하다는 당신을 보는 듯하오
십년지기 호롱이 불빛을 돌려 두루마기를 비춰주지만
유배지란 파수(把守) 없어도 스스로 가슴에 금줄 친 곳이라 이 저녁에
짚신감발로 마재까지 달리지는 못하고 있소
어둠이 개펄을 디디며 걸음을 재촉하는 무렵
안추르고 앉아 다홍치마 마름질하려 보니
고운 시절은 퇴색했어도 첫정을 서녘 하늘에 걸어둔 건 아닌지
초목도 당신 초록저고리가 그리워 봄마다 푸른빛을 올리는 건 아닌지
천년도 불변인 양, 태백성 혼자 빛을 뿌리고 있소
당파싸움의 완력은 태산도 뽑아버릴 듯 기세를 늦추지 않아
북두칠성마저 중심을 빼앗기고 기울어진 형국이오
북풍이 한설을 앞세워 강을 무두질하는 밤마다
잠 못 이룰 당신 베갯머리로 찬물이 쏟아질 것 같아
북극성으로부터 몇 걸음 떨어진 곳에 마음만 걸어두고
무릎에 인두를 들이대듯 밤하늘을 지킨다오
십 년 세월에 하루쯤 거를 만도 하건마는
여명에 기침(起枕)한 하늘이 감색 얼굴로 초당 처마를 들추는 시간
언 발로 올라오는 강진만 새벽안개에 댓잎 서걱거리고
게서 내려왔을 바람은 전해줄 안부도 없는지 신갈나무만 흔들어 놓고
발씨 익은 백련사로 가버렸소
칼바람이 다홍치마 노을빛을 개펄에 흩어버렸지만
첫정 두고 온 마재까지 파발을 띄우지는 못했을 거요
딸아이 혼인 소식에 매화 한 폭 더했으니 뒤틈바리 아비 마음을
문갑에 두고 보라 해주오 강진의 겨울은 서둘러 오고
초당의 봄은 기약조차 없소
* 정약용은 부인이 보낸 다홍치마를 마름질하여 하피첩(霞帔帖)을 만들어 보냈으며,
시집가는 딸에게는 매조도를 전했으니 후세에 매조서정이라 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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