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우체국에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만면에 미소를 띠며 반겨주는 M씨가 있다.
그냥 얼핏보면 수수한 것 같으면서도 조금 자세히 구다보면 수수하지만은 않은 몸태와 싱글벙글 웃는 모습이 갓난 아이처럼 해맑은 여인이다.
M씨는 G우체국 환경 미화원으로 일하고 있는데 영업과장의 보직을 맡고 있는 나는 여태껏 M씨가 본인의 직업에 대하여 창피해하는 내색을 조금도 훔쳐본 적이 없다.
가랑비가 내리던 어느 여름날 오후, 뜻밖에 2층에서 인터폰 호출이 왔다.
무슨 일인가 하여 단숨에 올라가 보았더니 앞치마를 두른 M씨가 달아오른 후라이팬에 발게진 얼굴로 부침개를 붙이고 있었고, 주위에는 어느새 강국장,자국 간부,이대리 등 많은 직원들이 모여 있었다.
예상된 설정이 아니었기에 나는 깜짝 놀라며 '아니 이런걸 다 어떻게 준비했어요'라고 묻자 M씨는 '국장 관사에서 국장의 손거름을 틈틈이 먹고자란 솔과 호박 고추들을 재료로 선택했고 물류과장과 직원들은 밀가루 한 봉지(1 kg)를 마련하는데 호주머니 돈을 모았다'고 했다.
듣고보니 '참 쉽게도 재료들을 구했구나' 싶었지만 작금의 직장생활에서 이런 자리를 만든다는 것이 정작 쉬운 일만은 아니지 않는가 !.
내심 고맙기도 하고 좋은 자리가 만들어진 것 같아 무척이나 흐뭇했다.
M씨가 '드세요'하며 노르스름해진 부침개를 쟁반위에 얹어놓자 둥그렇게 모여있던 우리 들은 체면도 잊은 채 젓가락을 동시에 내밀었고 부침개는 이내 개눈 감추듯 사라졌다.
탁자 위에 깔려있는 신문지 위에는 포천막걸리 2병이 의기양양 서 있었고 한 두잔 할 줄 아는 나는 '음양의 조화를 아는 여인이로구나'라며 혼자 중얼거렸다.
소위 말하자면 『비오는 날의 수채화』가 잘 그려진 풍경이었다.
직원들의 목구멍은 벌써부터 꿀꺽 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감히 술병을 낚아채 듯 들어 올리지 못하고 있었는데 정적을 깨는 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
'뭐 어때요 한잔씩만 하게요' M씨의 애교섞인 목소리였다.
순간 강국장은 '그래, 조금씩만 하자구'하며 동조했다.
우리는 가벼운 손놀림으로 종이컵에 막걸리를 나눠 들고 들이키며 캬 ~
나는 이런 풍경을 음미하며 인간답고 넉넉한 시간과 조우함을 행복해 했다.
내가 우체국에 입직하여 여섯 군데 우체국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지만 이런 풍경의 추억거리는 가물가물하기만 하다.
솔직히 말해서 우체국에 숙직이 있었을 때는 몇 않되는 직원들이 번갈아 가면서 숙직을 해야만하는 관계로 힘들어 했던 슬픈 기억도 있었지만 직원들끼리 형제처럼 오순도순 모여앉아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와 윷놀이 족구 등을 하면서 인간미를 돈독히 교류했던 소중한 추억들도 많이 있다.
그러나 지금은 IT산업이 발달하면서 우체국에 무인경비 시스템이 설치되고 사람과 사람들의 교류와 버물려짐이 단절되면서 편의주의와 이기주의가 만연되어가는 작금의 현실이 안타깝기만하다.
외람된 이야기지만 이런 현실속에서도 마치 연꽃같이 살아가는 사람이 G우체국 환경미화원 M씨가 아닌가 싶다.
몇일 전에는 택배발송 작업장에서 화급을 다투는 구원의 메시지가 날아들어었다.
즉; 금일 발송할 택배 우편물 1,300 여 박스를 후정에 늘어놓고 작업을 하는데 비가 오고 있으니 우편물류과 직원들을 동원해 달라는 마케팅실의 전언이었다.
이에 나는 우편물류과장에게 협조를 요청한 뒤 러닝셔츠 차림으로 청사 후정에서 우편물을 청사내 복도로 옮겨 쌓는 작업에 동참하고 있었다.
우편물을 들고 끙끙대며 복도로 들어서는 순간 청바지를 입은 누군가가 엉덩이를 하늘 높이 치켜든 채 쌓아 놓은 우편물 박스를 복도 안쪽으로 밀어 붙이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누군가 !. 바로 M씨였다. 아니 여성이었다.
남직원들도 빈둥댈 수 있는 상황이건만 M씨가 팔을 걷어 붙인 것이다.
나는 또한번 혼자 중얼거렸다. '참 좋은 ......' 교차하는 생각들로 잠시 떨구고 있던 고개를 들어 좌우를 살펴보니 어느새 여기 저기에는 구원의 손길들이 택배 작업장에서 함께하고 있었다.
작업을 마치고 아이스케익으로 내장의 열기를 식히고 있을 무렵 M씨는 목에 걸쳤던 수건으로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닦아내며 우리를 보고 빵~끗 웃어주었고 우리들의 입가에도 어느새 M씨의 웃음이 활~활~ 번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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