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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사 / 시의 방향

기타 시와 문학/시학

by 석란나리 2012. 11. 5.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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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시를 통하여 자아를 발견하고 시를 통하여 자아의 주체를 유지하고 시를 통하여 자아의 결함을 복구하며 시를 통하여 정신적 균형과 통일을 완성한다

사무사(思無邪)

공자의 유명한 '思無邪(사무)'라는 말에 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思無邪(사무사)'는 시를 논하는 사람들의 입에 자주 회자되는 유명한 구절입니다.
『논어』 위정편(爲政篇)에 수록되어 있는 공자의 전후 말씀은 이러합니다.

'시 삼백 편은 한 마디로 말해서 그 생각에 사악함이 없다'
 
(詩三百 一言而蔽之 曰思無邪)'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시 삼백은 곧 『시경(詩經)』을 이름이고, 『시경』 속에 수록되어 있는 시들(정확히는 305편)은 다 '거짓됨이 없이 바르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잘 알려져 있듯이 『시경』은 공자에 의해 편찬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은대(殷代)로부터 공자가 살았던 춘추(春秋)에 이르기까지 전해오는 3천여 수의 민요들 가운데서 공자가 선별하여 하나의 책으로 묶은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대략 멀리는 BC 10세기로부터 가까이는 BC 5세기까지의 작품들이 수록된 셈입니다.
수백 년 동안 전해져 내려오는 수천 수의 민요들을 놓고 도대체 공자는 어떤 기준으로 작품들을 선별했을까요?  
'思無邪'는 바로 그 선별의 기준을 이르는 말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수천 수의 노래들 가운데는 본능적인 욕정을 노래하는 수준미달의 음탕한 것들도 적지 않았을 것이고,
남을 미워하고 비방하는 투기 어린 노래도 없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마 공자는 그러한 노래들은 다 제쳐놓고 건실하고 고상한 '思無邪'의 노래들만 골라잡았을 것입니다.
공리적인 세계관을 지니고 있었던 공자로서는 그럴 만도 한 일입니다.
아니 어쩌면 그 당시 세상에 횡행하는 노래들이 너무 난잡했을지도 모릅니다.
이대로 두다가는 백성들의 정서가 크게 문란해질 것을 염려하여 공자는 이를 순화시키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바람직한 노래들만 선별하여 엮어낸 것이 『시경』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시경』의 편찬은 속된 노래들의 숙청 작업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공자는 시의 공리성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는 제자들에게 시의 효용에 관해 자주 언급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서도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양화편(陽貨篇)>의 '흥관군원(興觀群怨)'의 설입니다.  

  小子何莫學夫詩 詩可以興 可以觀 可以群
可以怨 邇之事父 遠之事君多識於鳥.獸.草.木之名
  (그대들은 왜 시를 배우려하지 않는가.
시는 감흥을 자아내게 하고, 사물을 관찰하는 데 도움을 주고,
여럿이 함께 어울릴 수 있게도 하고, 또한 마음에 맺힌 응어리를 풀게도 한다.
가까이는 어버이를 섬기고, 멀리는 임금을 섬기는 일이며
또한 금수와 초목의 이름을 많이 알게도 한다.)                                                     - 김영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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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위상

 

시인은 언제나 열어놓고 있는 의식의 촉수가 민감하고 섬세하다.
그 촉수에 걸려 든 사물과 물상들의 선연함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언어로 포착해 내는 것이 시가 아닐까?
그러므로 그 언어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정확해야 하는데도 정련되지 않은 채 조잡하고 외설스럽기까지 한 시어들이 난무하고 있음은 안타깝기만 하다.
이런 연유로 해서 결국 시의 품격과 위의를 잃어버리지 않았는가. 한 시대를 살아가는 높은 정신의 가장 순수하고 빛나는 한 마디 말이야말로
시의 본령인 서정의 깊은 세계가 가 닿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시는 최대한의 상상력을 가동시켜야 한다.
예술의 어느 분야나 영역 할 것 없이 상상력은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겠지만 특히 언어로 빚어지는 시에 있어서의 상상력은 가히 진수요, 요체인 것이다.
그것은 시가 곧 정신세계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양질의 시는 상상력의 크기에 정비례한다.
찌들고 형편없이 구겨진 일상에서 빛을 잃고 날로 삭막해져 가는 삶에 더는 어둡지 않도록 한 줄기 희망과 함께 축축이 젖어 흐르는 윤기를 보태기 위한 노력은 시적 상상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상상이야말로 절망과 암울을 희망과 환희로 좌절과 실의를 용기와 신념으로 치환해 내는 위력을 지닌다.
또한 상상은 우주를 단숨에 소요할 수 있는 비상의 큰 날개를 가지고 있다.
상상의 세계에서 과거는 추억의 화려한 의상을 걸치며 미래는 온통 설레임의 동경과 희구로 해서 잠을 설치게 한다. 때로는 이것이 현실에 대한 도피나 은둔으로 매도되기도 하고 그 허황됨에 조소를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그 근저에는 간절히 갈망하는 바의 이상향을 건설하려는 염원과 함께 소원을 성취함으로써 현실을 타개해 보려는 강한 의지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시에 있어서의 상상력은 언제나 지금의 세계와는 다른 보다 한 차원 높은 곳을 내다보는 창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시는 그 자체 속에 이상을 추구하는 신과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보들레르의 말과 같이 현실의 초월 의지로서의 시적 상상력이야말로 비애로 그늘진 일상에 원초적인 진솔한 삶의 원형과 건강함을 가져다 줄 뿐만 아니라 생활의 활력과 창조적인 삶을 영위해 가려는 강렬한 의욕을 불어 넣어준다.

시의 효용가치를 두고 논할 때, 시는 영원한 구원이 될 수도 없으며 정치도 경제도 아니며 또한 도달해야 될 목표도 아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뚜렷하게 대안을 제시한다거나 최선의 해결책을 내어놓을 능력도 없다.
그러나 시가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한 가닥 길이거나 수단이 될 수는 있으며 도달해야 할 최상의 목표를 향하여 나아가려는 힘과 용기임에는 틀림없다.
그런 까닭으로 해서 시는 한 곳에 정체되거나 어느 한 쪽으로 경도(傾倒)되어서는 안 된다.

시인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쉽게 매너리즘 속으로 빠져들어 안주하거나 아집과 편견의 견고한 껍질 속에 스스로 갇혀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무슨 주의나 유파에 휩쓸려 마침내 시를 잃어버리고 마는 경우나 평생을 실험정신에 매달리다 정작 자신의 목소리는 한 번도 내어보지 못하는 시인들을 많이 보았다.
시의 본령이라 할 수 있는 서정의 튼튼한 바탕 위에 일상적 삶의 진솔함과 건강함이 용해된 시적 진실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를 통틀어서도 참신성을 잃지 않고 항존적 가치를 누려 왔다. 

시와 시인이 갖추어야 할 덕목이란 인간과 역사와 삶 앞에 보다 진지하려는 정신의 준열함이다.
항시 깨어있음으로 하여 시인의 삶의 도처에는 열정으로 충만되어 있어야 한다.
언어의 질곡 속에 신음하는 시의 해방과 차원 놓은 시의 위상을 회복하기 위하여 빛나는 시인들이여 한껏 분발하라.    - 김석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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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정신세계의 언어로서 깊은 서정성에 바탕을 두되 양질의 상상력으로 사무사적인 시를 써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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