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아비(연시)
석란, 허용회
1
허수아비의 행색이 애처롭다
아비의 몰골은 영락없는 품바 같다,
삐틀어진 이목구비에
헤진 윗도리 하나 걸치고
왜가리 여울목 넘겨다보듯 외발로 서있다
(아비 이전의 행색이 저러지는 않았을 게다)
아비는 생의 허허벌판에서
어딘가를 물끄러미 주시하고 있는데
자식, 허수의 빈틈으로 스며드는
삭풍의 길목을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허수아비 소갈머리가
깊어지는 강물처럼 멍들어 가는데
우라질, 새는 무슨 ...
2
햇볕 여물어 가던 날,
주인이 물려준 남루 걸치고
농부의 땀 새지나 않을까
허수아비가 옷자락을 펄렁이며 새를 쫓고 있다
다랑논에서 추수가 한창인 농부의 속옷에
땀이 배어나올 때쯤이면
새참 내오는 아낙의 발걸음이 숨차고
일 거들지 못한 허수아비는
밀짚모자 꾹- 눌러쓰고 서 있다
논틀길 위에 보도시 엉덩이 걸치고
새참 나누는 농부의 너털웃음에
삶은 고구마 냄새가 묻어나면
허기진 허수아비는 땅거지라도 되고 싶다
수확의 흐뭇함이 버무려진
농부의 담소에 ‘고맙다’는 말 한마디 섞이지 않자
허수아비가 삐쳐 뒤돌아 장승처럼 서 있다
/ ym 01301, 00111